여러분은 '숲' 하면 어떤 향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가장 먼저 이끼 향이 생각나요. 간밤에 내린 비를 가득 머금어 평소보다 더 짙은 향을 뿜어내는 푸른 이끼의 향이 나는 것만 같습니다. 코 끝에 향이 맴돌면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이따금씩 큰 나뭇잎들이 서로 스치면서 마치 '풀썩' 앉는 것만 같은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적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는 유치원 행사로 낮은 산 하나를 함께 올랐었는데, 그날 아침부터 들떠서 산 정상에서 먹을 김밥을 싸고있는 엄마 주변을 방방 뛰어다녔던 기억도 납니다.
향은 기억과 연결되어 강한 힘을 갖고 있대요. 어떤 향은 나를 아주 옛날의 기억으로, 또는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죠. 그래서 향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감각의 영역을 건드리고, 후각에 국한되지 않는 공감각적인 경험인 것 같아요. 정겨운 후암동에 새로운 둥지를 튼 에오디에는 공방이 아닌 공간을 지향하며 향에 얽힌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안온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그날'을 뜻하는 에오디에는 지금 이 순간 나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보고, 집으로 가져와 내가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공간에 놓아보세요. 언제든 그 향이 나를 편히 쉬게 해주는 어딘가의 숲으로 나를 데려갈 수 있도록요.
💡 추천하는 이유
종이로 옮겨보는 향의 감상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는 마음의 숲
후암동의 정겹고 따뜻한 공간
[SQNC #016] 잠재된 기억과 특별한 향의 맞닿음 <에오디에>
초등학교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는다. 골목 곳곳의 작고 오래된 상점들을 바라보며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본다. 이윽고 눈앞에 등장한 남산타워를 보며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이토록 다양한 감정을 선사하는 후암동 골목길. 은은한 향기에 이끌려 시선을 돌리면 싱그러운 식물로 가득한 에오디에가 문을 활짝 열고 반겨준다.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치유되는 공간, 지금의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신비한 세계가 펼쳐진다.
에오디에 맹주연 대표 인터뷰
에오디에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타고난 후각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집에 들어가자마자 수박 향기가 느껴져서 부모님께 수박을 드셨는지 여쭤본 적이 있어요. 살짝 덜 익은 하우스 수박 향기가 난다고 말씀드리니, 부모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네 코는 참 유별나다."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약 10년 동안 회사원으로 일할 때에도 항상 향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모든 향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자연에서 느껴지는 향은 좋았지만, 제품에서 나는 인위적인 향은 오래 맡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편안한 향을 찾기 위해 차와 꽃 등 향을 품은 존재를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배웠답니다. 심지어 향을 더 알고 싶어서 화학을 공부하기도 했고요.
일년 동안은 하루에 다섯 시간씩 조향을 배웠어요. 배움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오히려 향의 세계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자만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평생 옆에 두어야 향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평생 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이 행복을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에오디에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에오디에를 찾는 분들에게 어떤 행복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지금의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Eo Die, 에오디에는 고대 라틴어로 ‘그날’을 의미해요. 적는 순간, 말하는 순간,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모두 과거가 됩니다. 향기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향이라도 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와 만개할 때의 향이 다르듯 향 자체가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요.
오늘, 지금 이 순간을 향기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깊은 차원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해요. 평소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죠. 세상의 향기를 탐구하고 기록하며 함께 나눌 때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의 입에서 항상 감탄사가 흘러나와요. 같은 향에 대해 서로 얼마나 다르게 느끼는지 깨닫고 즐거워하세요.
내가 맡고 느끼는 것이 100% 정답이듯,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생각 역시 100% 정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존중이 생겨납니다.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죠. 클래스가 진행되는 동안,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묵직한 행복과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된답니다. 그때의 행복은 예상보다 훨씬 커다란 감동을 선사해요.
클래스 기획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신 것 같아요. 이번 클래스에서는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나요?
편안하고 따뜻한 경험을 드리기 위해 가장 큰 힘을 쏟고 있어요. 단순히 향수를 만드는 수업이 아니에요. 세상의 향을 더욱 풍부하게 느끼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된답니다. 대다수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해요. 저는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의 잠재된 기억과 향기가 맞닿는 순간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설렘을 안고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을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따뜻한 차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걸어오며 높아진 심박수를 진정시키고 편안함을 안겨드리려고 해요. 차를 마시며 클래스의 테마에 맞는 주제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마음의 숲 만들기 클래스에서는 향으로 나만의 숲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점차 깊은 기억 속에 있는 숲을 떠올리게 되죠.
모두의 기억이 다르듯 숲을 표현하는 방법도 저마다 달라요. 자신이 생각하는 숲의 향에 대해 언어로 기록한 후 실제 향으로 숲을 표현합니다. 이어서, 크기와 질감이 다른 재료로 내가 생각하는 숲을 직접 만들어요. 이를테면 저는 따뜻한 숲을 좋아하는데요. 울창한 나무가 있어서 공기는 시원한데, 햇살이 스며들어 따뜻한 숲이죠. 이런 숲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거예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향의 취향을 발견하고 일상에서도 향유할 수 있는 결과물을 갖게 된답니다.
공간에서도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져요. 이 공간은 어떻게 기획하셨나요?
저는 공방이 아닌 공간을 지향해요. 이곳에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함께 대화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흐릅니다. 수업과 관련된 재료와 결과물을 돋보이게 하려면 새하얀 인테리어와 가구가 잘 어울렸을 거예요. 나무 테이블도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조향 클래스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이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대리석이나 철제 테이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벽의 미장도 이틀 동안 혼자 직접 했고 식물들도 매일 관리를 해줄 정도로 공간에 저의 애정이 깃들어 있어요. 공간을 관리하는 과정이 즐겁고, 이 공간을 좋아하는 분들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행복해요. 공간을 둘러싼 동네 역시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어린 친구들이 웃으며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고 동네 할머니들의 정겨운 대화소리도 들려요. 수업 중에 소리가 들릴 때에는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이 함께 미소를 짓기도 한답니다. 16주 동안의 정규 클래스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수업에 올 때마다 새롭고 흥미롭다고 말씀하신 적도 많아요.
이번 클래스에서 가장 섬세하게 기획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이 스스로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향기와 기록은 일상의 작은 틈새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죠. 사실 저는 쉼에 익숙하지 않아서 일부러 하루에 30분씩 시간을 내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약 6개월 동안 매일 반복하니 제법 익숙해졌어요. 더불어 그 틈새의 시간 덕분에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하나로 꿰어져서 이 공간이 탄생하는 멋진 경험도 할 수 있었고요.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분들은 수업 중에 억지로 말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 시간은 오롯이 지금의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니까요. 실제로 질문에도 짧게 답하시며 묵묵하게 수업에만 집중하신 분도 있었어요. 수업이 끝난 후 그분에게 장문의 문자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안장애를 겪고 계신 분이었어요. 수업 덕분에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며 감사를 표현해 주셔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감도 높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감도 높은 경험은 복합적인 다양성을 마주했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시퀀스 프로젝트에서도 단편적인 경험 대신 여러 경험을 선물해 드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향에 대해 강의하듯 수업하지 않아요.
높은 감도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바쁜 생각들이 멈추는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내 앞에 놓인 재료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고 향으로 맡으며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무화과를 테마로 한 클래스에서는 잎의 향과 과실의 향을 각각 느껴보고 무화과를 직접 맛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무화과와 관련된 역사와 신화 등의 이야기도 함께 공유하고요. 복합적인 다양성을 느낄 때 나만의 향을 표현하는 일이 훨씬 쉬워진답니다.
에오디에 클래스를 즐기는 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스스로 정한 큰 의미와 목표에 짓눌리지 않고, 잘하겠다는 욕심을 버린 채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거예요. 수업을 배운다기보다 감정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이 꿀팁입니다. 클래스 공간에서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은 저의 역할이에요. 일상에 마음에 너무 매여 있는 상태라면 그 끈을 살짝 풀어내고 쉬는 마음으로 클래스에 참여하면 더욱 감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