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4시간 동안의 커피 이야기. 투어를 진행하는 작가님과 열정적으로 듣고 음미하는 참여자분들. 지난 10월, 첫 스페셜티 커피 투어로 떠난 연희동은 함께해서 따뜻했고, 또 뜨거웠습니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모이면 그 힘은 단단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 외에는 접점이 없지만, 서로 다른 커피를 시켜 나눠 마셔보고 각자 어떻게 느끼는지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조금씩 더 가까워졌습니다. 투어 내내 코 끝을 맴돌던 커피의 잔향과 함께 그 장면들이 기억나네요.
이번에는 성수동입니다. 연희동보다 더 통통 튀고 개성 있는 성수동의 스페셜티 커피 투어는 커피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예멘 커피의 대표 주자 '디 진테제'의 부부 대표님이 진행합니다. 쉽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예멘 커피부터 성수동 곳곳의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3곳을 만나보며 각 브랜드 대표님들이 직접 말하는 그들의 철학과 가치를 함께 들어볼 거예요. 커피 한 잔에 담긴 그 이상의 이야기, 우리 성수동에서 만나요!
💡 추천하는 이유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커피를 탐구해보는 시간
스페셜티 커피의 다채로운 무대, 성수동
로컬 브랜드의 진정성
[SQNC #017] 생경함을 익숙함으로<디 진테제>
올 여름 회사 꼭대기 층에 독특한 풍미의 예멘 스페셜티 커피를 제안하는 카페가 들어섰다. ‘예멘 커피’라는 말은 어딘가 생경하지만 ‘모카’를 들으면 이내 친숙해진다. 특유의 초콜릿향으로 매우 유명한 모카 커피의 기원이 바로 예멘이다. ‘커피’는 많은 이들에게 하루를 살아가는 동력을 주는 일상의 음료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깊고 넓다.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도 마찬가지. 커피는 그것이 그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요즘 커피가 좋아지고 있다는 이들에게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를 제안한다. 이 씬에는 유독 커피를 진정성 있게 대하고,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이들이 많다. 마치 공유 오피스에 매장을 연 ‘디 진테제’처럼. 연희동 투어에 이어 성수에서 스페셜티 커피 투어를 진행할 ‘디 진테제’의 예한과 알라를 만났다.
디 진테제 예한, 알라 인터뷰
‘디 진테제’를 소개해주세요.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요. 저희 브랜드 이름이기도 한 ‘디 진테제(Die Synthese)’는 독일어로 ‘종합’이라는 뜻이에요. 네 개의 선분이 합쳐져 사각형이 완성되는 것처럼 어느 하나의 측면이 아닌 커피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브랜드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어요. 저희는 예멘에서 직접 생두를 수확하고 농부들과 함께 가공합니다. 수입과 유통 그리고 카페 운영을 통해 커피를 직접 판매하고 있어요. 저희의 철학을 잘 표현해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의대 공부를 마친 알라는 파일럿이 되고 싶어 한국에 왔는데요. 팬데믹으로 오래 머물게 되면서 국내에서 유통되는 예멘 커피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마셔보고나서 자꾸 화를 내는 거예요. 예멘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잘못된 예멘 커피를 만들고 있는 곳들이 많았던 거죠. 그래서 직접 예멘의 품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하기 위해서 코로나19 이전부터 조금씩 준비했습니다. 카페에 저희가 로스팅한 예멘 원두를 보여드리면 “이 귀한 예멘 커피를 어떻게 가져왔냐”며 놀라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외면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새로운 커피의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예멘 커피를 사랑해주는 스페셜티 커피 대표님들이 더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애정어린 조언을 해줍니다.
커피에 빠지게 된 이유가 있다면?
커피에 빠졌다기보다 ‘중독됐다’는 표현이 맞을 듯해요. 많은 분들이 같은 마음일 텐데, 지금도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깨지 않거든요. 그만큼 저희에게도 일상에서 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입니다.
예멘 커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예멘 커피는 전세계 커피 씬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데요. 커피의 기원은 에티오피아지만, 상업화해서 무역을 통해 세상에 알린 건 예멘이 최초예요. 카페 모카 이름도 예멘 서부의 ‘모카 항구’에서 커피 무역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최초로 상품화시킨 나라이죠. 그래서 예멘 사람들은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요.
예멘 커피 원두는 오밀조밀하고 단면이 울퉁불퉁해요.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춥고 척박한 기후를 견뎌낸 커피죠. 다른 지역은 1년에 2~3회 수확한다면 예멘에서는 오직 1번 밖에 안 돼요. 메인 캐릭터는 초콜릿이지만 굉장히 복합적인 맛을 냅니다. 스페셜티 커피 중에도 특정한 향과 맛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산미와 과일향, 초콜릿 그리고 중동 지역을 연상케 하는 스파이시한 향신료 맛도 어우러져 있죠. 가격대가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해요.
성수동 스페셜티 커피씬의 무드도 궁금합니다.
성수도 연희동만큼 굉장히 유니크하고 개성이 뚜렷한 카페가 모여 있습니다. 분위기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연희동의 스페셜티 커피씬이 보다 로컬 중심, 패밀리 같은 문화라면 더 넓은 연령대와 직업군,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성수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이죠. 상대적으로 힙스터 같은 카페도 많은 듯싶어요.
스페셜티 커피의 공통점인데 진정성 있게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로우키도 그렇고, 브루잉 세레모니도 그렇고 핸드브루잉을 하며 고객에게 커피를 설명하는 방식이 뛰어나요. 브루잉 세레모니 대표님은 손님들에게 손수 제작한 카드를 만들어 주시는데 그 부지런함에 감탄합니다. 그냥 마셨을 때 맛있는 커피도 많지만 디테일한 설명을 들으면 다음에 또 그 커피를 찾게 되거든요.
디 진테제가 준비한 시퀀스 투어를 소개해주세요.
성수에 위치한 진정성 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4곳을 소개합니다. 성수 스페셜티 커피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 ‘메쉬커피’와 샴페인 블렌딩으로 잘 알려진 ‘로우키’, 그리고 성수 로컬이 사랑하는 ‘베러로스팅랩’과 저희 ‘디 진테제’가 함께합니다. 모두 브루잉커피로 유명하죠. 브루잉은 핸드드립과 동의어로 아는 분들이 있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투어 때 모든 카페 대표님들이 시간을 내어 브랜드와 커피 해설을 해주시기로 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빡빡하게 배우기만 하는 투어는 아닙니다. 자유롭게 커피 세계를 느껴볼 시간도 배정했어요. 브루잉 커피를 중심으로 성수동의 매력적인 스페셜티 커피를 알게 될 거예요. 같은 브루잉이지만 브랜드마다 어떻게 다른지, 각자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시퀀스 투어 중 가장 섬세하게 기획한 부분은?
모두 브루잉으로 말하는 카페들인데 레시피가 완전히 달라요. 네 군데에서 브루잉 커피를 내리는 방식을 세세하게 알려주실 겁니다. 저도 국내외 카페를 찾아다니며 각 브랜드가 알려주는 설명을 듣는 시간을 좋아해요. 같은 원두라도, 같은 에스프레소라도 무엇이 다른지를 알고, 여러 차이점 중 나와 가장 잘 맞는 취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투어만한 경험이 없습니다. 제가 느끼는 커피 투어의 장점과 매력을 그대로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왜 성수동의 스페셜티 커피씬이 유니크한지 알게 될 거예요.
어떤 경험이 감도 높은 경험일까요?
‘레어 앤 유니크(rare and unique)’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특별하지 않잖아요? 나에게 특별하게 각인되는 경험이 감도 높은 경험일 것 같아요. 그리고 ‘레어 앤 유니크’는 ‘디테일(detail)’로 드러납니다. 커피도 마찬가지인데요.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며 모두에게 설명을 시작합니다. 설명은 무조건 길다고 좋은 게 아니겠죠. 그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것을 정확히 제안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내 취향을 존중해주고 맞춰주는 섬세함.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드는 디테일한 요소들이 곁들여졌을 때 전에 없는 경험이 완성돼요.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섬세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멘 커피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희소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레어 앤 유니크’라 볼 수도 있지만 충분한 설명이 곁들여져야 비로소 듣는 이의 마음에 각인될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스스로 오감을 깨우고, 느껴보고, 기록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렇게 능동적인 분들은 많지 않으니까요.
이번 투어를 잘 즐기기 위한 팁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제 추운 겨울이에요.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고, 편한 신발을 신어주세요. 또 커피를 여러 잔 마시게 되니 든든히 식사를 하고 오시는 게 좋습니다. 커피를 느끼는 데 날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추우면 따뜻한 커피를 더 맛있게, 더우면 시원한 커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디 진테제는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 브랜드로 남고 싶나요?
아직 국내에 덜 알려진 예멘 커피를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예멘 커피의 독특한 맛 때문에 협업 요청이 자주 들어오는데, 지난 8월에 스웨덴 귀리 음료 ‘오틀리’와 함께 진행한 행사에서 ‘다른 산지의 커피는 오틀리와 섞으면 맛이 죽는데 예멘 커피는 오히려 맛이 폭발한다’고 피드백해주셨어요. 이토록 유니크한 예멘 커피 고유의 맛을 그대로 소개해나가고 싶습니다. 곧 저희 시그니처 커피도 출시되는데, 예멘의 복합적인 맛을 예멘 커피의 캐릭터로 정돈하는 작업도 함께하고 있어요. 일단 예멘 사람이 예멘 커피를 소개하는 시간 자체가 특별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아직 스페셜티 커피 커뮤니티가 작은데, 그 힘은 정말 강하다고 느껴요. 바리스타들의 커피 사랑이 커피를 소개하는 말과 표현 하나하나에 뚝뚝 묻어납니다. 소비자들도 어느 카페에 좋은 커피가 들어왔다면 귀신 같이 알고 찾아와요. 내가 즐기는 것에 기꺼이 돈을 쓰는 것 같죠.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 흐름에 이끌리듯 예멘의 풍미도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