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즈킷사(재즈를 들을 수 있는 일본식 찻집)’에 빠진 뒤 ‘나도 이런 공간을 갖고 싶다’는 열망으로 탄생한 '재즈스퀘어드'는 우리 속에 숨은 아날로그를 회복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지향합니다. 역삼역 인근에 숨어든 동굴 ‘마이리틀케이브’에서 ‘재즈 오마카세’ 모임을 진행하며, 다양한 곡을 소개하는 ‘플레이리스트’와 ‘디제잉’으로 재즈와 LP가 주는 회복을 선물하고 있어요.
1부는 편안한 재즈 LP를 들으며 독서에 집중하고, 2부는 주말에 한 시간 동안 독서했다는 만족과 작은 성취감을 나누며 오늘 읽은 책도 소개합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 내 안의 아날로그를 되찾고 싶은 분들, 주말에 아무 방해 없이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분, 커피와 음악에 대한 나만의 낭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 추천하는 이유
잃고 산지 오래 된 아날로그 감성의 회복
‘굳이’의 낭만을 품은 3가지 발견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
[SQNC #042] '낭만'은 살아 있다, 당신에게도
시퀀스 론칭 준비에 한창일 때, 함께 한 파트너와 창문도 없는 회의실에 틀어박혀 시퀀스의 ‘브랜드 키워드'를 고민했다. 그것도 형용사로. ‘영감을 주는’ 이건 너무 흔해 빠졌고, ‘영감'을 ‘인사이트’로 바꿨더니 무슨 자기계발 서비스 같고. ‘감동적인'은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시퀀스를 경험하는 분들이 어떤 기분으로 돌아가셨으면 좋을지 고민하다 선택한 표현이 ‘감명받는'이었다. 머리로 시작해 가슴에 새겨지는 경험. 누군가에게는 ‘영감'일 수 있고, ‘감동'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경험을 소개하는 일. 얼마나 잘 해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에 새긴 채 일하고 있다. 역삼동 ‘마이리틀케이브'에서 재즈오마카세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재즈스퀘어드도 ‘감명'을 추구하는 분인 듯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윤식 호스트 인터뷰
재즈를 만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정확히 스무 살 때였어요. 대학교에 입학하면 선배들이 참 커보이잖아요. 여러 선배들 중에 제가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어요. 그 선배가 저를 카페로 데려가 ‘어른이니까 이런 것도 마셔봐야 된다’면서 쓴 아메리카노를 먹이고, 재즈 매니아라 반강제로 재즈를 듣게 했습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대표곡 ‘Misty’를 함께 들었던 몽글몽글한 기억들이 공감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재즈스퀘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작년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를 읽었습니다. 첫 문장이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였어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죠. 그리고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내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순간이 현 시대의 질병이라 생각해요. 그 질병을 ‘디지털’이라고 표현한다면 반대는 ‘아날로그’라 생각하고, 저는 ‘아날로그를 어떻게 구현하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친한 동생이 LP를 지독하게 사 모으는 헤비 콜렉터이자 재즈 매니아예요. 이 친구가 제 옆에 있었고, 덕분에 좋은 음악과 재즈 명소를 추천 받았습니다. 좋은 계기가 있어 일본을 네 번 다녀왔는데 일본이야말로 레코드의 천국이에요. 이 친구가 '재즈킷사(재즈를 들려주는 일본식 찻집)'를 추천했습니다. 무조건 가봐야 된대요. 그래서 너무도 충실하게 네 번 모두 도쿄타워나 많이들 가는 명소는 한 군데도 안 가고 날마다 재즈킷사에 미쳐 살았어요. 여기는 음악을 정말 크게 틀어주는데 ‘나도 이런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어요. 큰 음악을 들으니까 ‘음악으로 도피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시대가 앓고 있는 질병을 알게 됐고, 재즈와 LP로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재즈스퀘어드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을 갖고 운영합니다. 첫째는 ‘플레이리스트’예요. 재즈킷사를 추천해준 동생이 영상 작업을 하는데, 그 동생과 종종 플레이리스트 영상 작업을 함께 합니다. 두 번째는 ‘재즈 오마카세’라는 재즈 음감회입니다. 시퀀스에서 소개하고 있고요. 세 번째는 직접 몸으로 뛰는 디제잉이에요. 카페나 전시회, 여러 행사를 할 때 재즈를 BGM으로 깔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올해는 디제잉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재즈 LP를 큐레이션하는데 윤식님만의 원칙이 있다면?
불편한 아날로그 속에 숨겨진 “굳이”의 낭만이 세상을 바꾼다.
재즈스퀘어드의 비전입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방향은 결국 사람들에게 ‘아날로그의 불편함 속에서 피어나는 멋짐과 낭만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해요.
그런데 재즈를 바라보는 분들은 두 가지를 오해합니다. ‘너무 어렵다’는 것과 ‘너무 느끼하다’는 감정이에요. 1990년대에 차인표 배우가 모 드라마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과거 매체에서 재즈를 표현한 방식이 선입견을 심었다고 생각합니다.
재즈스퀘어드는 이 어려움과 느끼함을 타파하는 것이 목표예요. 오마카세 형태로 어떤 키워드나 포인트를 잡고 재즈를 감상하게 하면 보다 쉽게 재즈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재즈의 황금기인 192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다양한 재즈를 펼쳐보이면 펑키하고 소울풀한 재즈도 있다는 걸 깨닫
죠.
시퀀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재즈 오마카세 모임을 소개해주세요.
‘맡긴다’라는 뜻의 ‘오마카세’처럼 제가 재즈 셰프가 되어 모든 시간을 펼쳐냅니다.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프라이빗한 음감회인데요. 제가 선곡한 곡을 쉽고 재밌게 들을 수 있게 진행하고, 재즈와 술을 결합했어요. 재즈 오마카세는 1, 2부로 구성됩니다. 1부는 선곡한 음악을 함께 듣고, 2부는 ‘디저트’라고 해서 감흥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역시 아날로그 행위인 편지를 쓰기도 하고,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기도 해요. 모든 시간을 아날로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즈 오마카세에서 가장 섬세하게 기획한 부분이 있다면?
재즈스퀘어드의 비전을 충분히 납득시키고 시작합니다. 그냥 재즈가 좋고 호기심이 생겨서 재즈를 듣는 게 아니라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고 ‘아날로그 행위’를 2시간 동안 집중해서 하는 경험이라는 부분을 강조해요. 본 세션 전에 참여자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시간이죠. 그리고 스마트폰을 모두 걷습니다. 2시간 동안 휴대폰 없이 살아보니 처음은 불안했지만 점점 스마트폰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며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세요. 저는 재즈가 둘째고 아날로그가 최우선이니까 뿌듯했죠.
7곡 정도 선곡하면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 곡이 제가 준비한 필살기입니다. 매우 생소하고 때로 아방가르드하기까지 한 프리 재즈를 소개해요. 곡이 시작되면 당황하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재즈스퀘어드가 아니었으면 이런 노래를 평생 못 들어봤을 것 같다’며 좋게 받아들여주세요. 준비한 입장에서 짜릿한 만족감을 얻는 포인트죠.
새롭게 시작하는 시퀀스 모임도 궁금해요.
재즈 오마카세의 연장선입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아날로그고요. 술 대신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드릴 거예요. 1부는 재즈 LP를 들으며 독서에 집중해봅니다. 이때 저는 편히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편안한 재즈를 선곡하겠죠? 2부는 주말에 한 시간 동안 독서했다는 작은 성취감을 나누며 각자 읽은 책도 소개합니다. 기존의 재즈 오마카세와는 다른 결을 가진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습니다.
윤식님의 휴식법이 궁금하네요
제 일본 여행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의자에 앉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수동 이리카페와 도덕과 규범에 좋아하는 자리가 있는데 토요일 오전에 주로 찾아가요.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에서 음악 듣고 책 읽는 시간이 제게는 큰 휴식이고, 그 자리가 제게 주는 느낌이 있어서 좋아합니다.
감도 높은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감도 높은 경험을 의인화하면, 경험은 머리에서 시작해 가슴으로 넘어가요. 어떤 경험이든 시작하기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고 기대합니다. 음감회에 적용하면, 머리의 기대감이 얼굴로 이동해 눈으로 보고, 코로 하이볼의 향을 느끼고, 귀로 음악을 듣는 오감의 즐거움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가슴으로 내려와 여운이 남아야 하겠죠. ‘감도 높은 경험’이라고 하니까 감각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경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런 여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즈스퀘어드의 시퀀스를 보다 잘 즐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마카세잖아요? 셰프가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겠지만 손님은 손님으로서 맛있는 음식을 잘 먹기 위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최대한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이고 다음은 ‘내 아날로그성을 회복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이 두 가지 강한 결심이 있다면 제 시퀀스를 온전히 흡수하고 돌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